1학년을 위한 선형대수 노트 — Bridge: 왜 복소수인가
지금까지는 벡터 공간을 실수 공간인 $\mathbb{R}^2$로 가정하였다. 이제부터는 벡터 공간을 복소수 공간 $\mathbb{C}^n$으로 옮겨보도록 하자. 실수 공간에서 복소수 공간으로 옮기면 유리한 이유가 두 가지가 있다. 이에 대해 알아보자.
B.1 수학적 이유: 실수 공간에서는 고유값이 없을 수 있다 ★★★
예를 들어 아래와 같이 평면을 $\theta$만큼 돌리는 rotation matrix가 있다고 하자.
\[R(\theta) = \begin{pmatrix}\cos\theta & -\sin\theta \\ \sin\theta & \cos\theta\end{pmatrix}\]4장에서 배운 대로 characteristic equation을 세우면,
\[\det(R-\lambda\mathbb{1}) = (\cos\theta-\lambda)^2 + \sin^2\theta = \lambda^2 - 2\lambda\cos\theta + 1 = 0\]이 되고, 근의 공식을 적용하면
\[\lambda = \cos\theta \pm \sqrt{\cos^2\theta - 1} = \cos\theta \pm i\sin\theta = e^{\pm i\theta}\]를 얻는다. 이때 $\theta$가 $0$이나 $\pi$가 아니면 실수 고유값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놀라운 결론을 얻는다.
이를 다시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처럼 보인다. 화살표가 놓여져 있는 평면을 회전시킨다고 하였을 때, 평면을 0도 회전시키거나 180도로 회전시키지 않는 한, 그 방향이 그대로 유지되는 화살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.1 따라서 실수 공간을 다루는 한 이 행렬은 diagonalization이 불가능하다.
그렇다면 복소수 공간으로 옮기면 어떻게 될까. 대수학의 기본정리(fundamental theorem of algebra)에 따르면 복소수 계수를 갖는 $n$차 다항식은 $\mathbb{C}$ 위에서 항상 $n$개의 근을 갖는다. Characteristic equation은 다름 아닌 다항식이므로, 복소수 공간에서는 모든 행렬이 반드시 고유값을 갖는다. 방금 본 $R(\theta)$도 $\lambda = e^{\pm i\theta}$라는 어엿한 고유값을 얻었다. 실수 공간에서 “존재하지 않던” 것이 복소수 공간에서는 자연스럽게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.
이것이 우리가 무대를 $\mathbb{C}^n$으로 옮기는 첫 번째 이유이다. 고유값과 diagonalization이 우리가 하려는 거의 모든 일의 도구인데, 실수 공간에서는 그 도구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다. 복소수 공간에서는 항상 있다.
여기서 하나만 미리 눈여겨보고 넘어가자. 방금 얻은 고유값의 크기를 재보면
\[|\lambda| = |e^{\pm i\theta}| = 1\]이다. 즉 회전은 벡터의 길이를 전혀 바꾸지 않는다.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, 이 성질 — 길이를 보존하는 변환은 고유값의 크기가 1이다 — 이 8장에서 만날 unitary operator의 핵심이다. 양자 게이트가 전부 unitary인 이유도 결국 이것이다.
B.2 물리적 이유: 위상은 실재한다 ★★★
두 번째 이유는 수학이 아니라 물리에서 온다. 다음 두 상태를 보자.
\[\lvert+\rangle = \frac{1}{\sqrt2}\big(\lvert0\rangle+\lvert1\rangle\big), \qquad \lvert-\rangle = \frac{1}{\sqrt2}\big(\lvert0\rangle-\lvert1\rangle\big)\](아직 $\lvert0\rangle$, $\lvert1\rangle$이라는 기호가 낯설다면 그냥 $\mathbb{R}^2$의 표준기저 $\hat{e}_1$, $\hat{e}_2$라고 생각해도 지금은 무방하다. 5장에서 제대로 정의한다.)
두 상태의 차이는 가운데 부호 하나뿐이다. 이 부호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? 두 상태를 그대로 측정해보면 둘 다 $0$과 $1$이 각각 50%씩 나온다. 결과가 완전히 똑같다. 그렇다면 부호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.
그런데 측정하기 전에 Hadamard gate $H$를 한 번 걸어보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. $\lvert+\rangle$은 확률 1로 $0$을 주고, $\lvert-\rangle$은 확률 1로 $1$을 준다. 아까는 구별이 전혀 안 되던 두 상태가 이번에는 100% 완벽하게 구별된다.
즉 계수의 부호는,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위상(phase)은,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물리적 실체이다. 우리가 상태를 확률로 기술한다고 해보자. 확률은 항상 0 이상의 실수이므로 이 부호 정보를 담을 자리가 없다. 그래서 양자역학은 상태를 확률이 아니라 probability amplitude라는 복소수로 기술하고, 실제 확률은 그 절댓값의 제곱 $|\cdot|^2$을 취해서 얻는다.
이 구조가 왜 중요한지는 두 경로의 amplitude를 더할 때 드러난다. 각각의 amplitude가 $a$, $b$일 때
\[|a+b|^2 = |a|^2 + |b|^2 + 2\,\mathrm{Re}(a^*b)\]가 된다. 만약 확률을 그냥 더했다면 앞의 두 항만 나왔을 것이다. 마지막에 붙은 교차항(cross term) $2\,\mathrm{Re}(a^*b)$이 바로 간섭(interference)이며, $a$와 $b$의 상대적인 위상에 따라 이 항은 양수가 되기도 하고 음수가 되기도 한다. 즉 두 경로가 서로를 강화할 수도, 상쇄시킬 수도 있다.
이 교차항이 양자 알고리즘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. 양자 알고리즘은 결국 원하지 않는 답의 amplitude끼리는 상쇄 간섭하게 만들고, 원하는 답의 amplitude는 보강 간섭하게 만드는 기술이다. 복소수를 버리면 이 항이 사라지고, 남는 것은 고전 확률론뿐이다.
다만 한 가지 조심할 것이 있다. 위상이 언제나 관측되는 것은 아니다. 상태 전체에 같은 위상을 곱한 $e^{i\varphi}\lvert\psi\rangle$은 원래의 $\lvert\psi\rangle$과 물리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상태이다. 어떤 측정으로도 둘을 구별할 수 없다. 이런 $e^{i\varphi}$를 global phase라 부르며, 아무 물리적 의미가 없다. 방금 우리가 본 $\lvert+\rangle$과 $\lvert-\rangle$의 차이는 $\lvert0\rangle$ 성분과 $\lvert1\rangle$ 성분 사이의 위상차, 즉 relative phase이고, 이것만이 관측 가능하다. 이 구분은 앞으로 계속 등장하니 지금 확실히 해두자.
B.3 무엇이 살아남고 무엇이 죽는가 ★★★
이제 무대를 옮기기 전에 짐을 정리하자. Part I에서 만든 직관 중 어떤 것은 그대로 가져갈 수 있고, 어떤 것은 두고 가야 하며, 어떤 것은 모양을 바꿔서 가져가야 한다.
| Part I ($\mathbb{R}^2$) | $\mathbb{C}^n$에서는 |
|---|---|
| 벡터는 화살표이다 | ✗ 버린다. 성분이 복소수라 종이에 그릴 수 없다. 대수적 정의만 남는다 |
| 행렬의 열은 기저벡터의 행선지이다 | ✓ 그대로 |
| 기저는 좌표계의 선택이다 | ✓ 그대로.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|
| Span, linear independence, dimension | ✓ 그대로 |
| $\det$는 부피 배율이다 | △ 기하학적 의미는 버린다. 고유값을 구하는 계산 도구로만 쓴다 |
| 고유벡터는 자기 직선 위에 머문다 | ✓ 그대로 |
| 고유벡터는 크기만 변한다 | ✗ 틀린 문장이 된다. $\lambda$가 복소수면 크기가 아니라 위상이 변한다 |
| 내적은 길이와 각도를 준다 | △ $\langle\psi\lvert\phi\rangle$는 복소수이다. 물리적 의미를 갖는 것은 $\lvert\langle\psi\lvert\phi\rangle\rvert^2$ |
| 직교란 수직이라는 뜻이다 | ✓ 유지. 단 “완벽히 구별 가능한 상태”라는 새 의미가 붙는다 |
| Transpose $A^T$ | → Adjoint $A^\dagger=(A^T)^*$로 바뀐다 |
| 대칭행렬 $A=A^T$ | → Hermitian $A=A^\dagger$. 관측량이 여기 속한다 |
| 직교행렬 $O^TO=\mathbb{1}$ | → Unitary $U^\dagger U=\mathbb{1}$. 양자 게이트가 여기 속한다 |
특히 표의 아래 세 줄을 눈여겨보자. 실수 공간에서 transpose가 하던 일을 복소수 공간에서는 전부 켤레를 취한 transpose, 즉 adjoint가 대신한다. 이유는 단순하다. 벡터의 길이를 재려면 $\langle\psi\lvert\psi\rangle$이 0 이상의 실수여야 하는데, 성분이 복소수일 때 이를 보장하려면 한쪽에 켤레를 씌우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. 실제로 $z^2$은 음수가 될 수 있어도 $z^*z=|z|^2$은 절대 음수가 되지 않는다. 0장에서 확인했던 사실이 여기서 쓰인다. 자세한 것은 6장에서 다룬다.
앞으로 새로운 개념이 나올 때마다 위 표를 다시 펴보기 바란다. 대부분의 경우 여러분은 그 개념을 이미 Part I에서 실수 버전으로 배웠고, 새로 할 일은 적당한 자리에 켤레를 하나 얹는 것뿐이다.
정리 $\mathbb{R}^2$에서 배운 것 중 그림은 버리고 구조는 전부 가져간다. 다만 transpose가 나오는 자리마다 켤레를 하나씩 얹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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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0도 회전, 즉 $\theta=\pi$인 경우를 조심하자. 이때 화살표는 정반대로 뒤집히므로 일상적인 의미의 “방향”은 바뀐다. 그러나 4장에서 우리가 내린 정의는 자기 자신이 span하는 직선 위에 머무는 벡터였고, 뒤집힌 화살표는 여전히 같은 직선 위에 있다. 실제로 $R(\pi)=-\mathbb{1}$이므로 모든 벡터가 고유값 $\lambda=-1$의 고유벡터이다. 앞으로 “방향이 보존된다”는 표현을 볼 때마다 이 정의를 떠올리기 바란다. ↩