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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대: 실수 공간 $\mathbb{R}^2$

Part I의 목적은 계산 연습이 아니라 관점을 얻는 것이다. 핵심 문장은 두 개다.

  1. 기저(basis)는 좌표계의 선택일 뿐이다. 벡터 자체는 기저와 무관하게 존재한다.
  2. 행렬은 숫자 표가 아니라 변환(transformation)이다. 벡터를 다른 벡터로 보내는 함수다.

이 두 문장이 노트 전체를 관통한다. Part II에서 새로운 기호가 쏟아질 텐데, 그때마다 이 두 문장으로 되돌아오면 길을 잃지 않는다.


1.1 벡터공간이란 무엇인가 ★★★

고등학교에서 벡터를 “크기와 방향을 가진 화살표”로 배웠을 것이다. 이 정의는 직관적이지만 곧 한계에 부딪힌다. 우리가 앞으로 다룰 벡터는 화살표로 그릴 수 없기 때문이다.

수학에서 벡터의 정의는 훨씬 소박하다.

벡터공간 (vector space)이란, 원소들끼리 더할 수 있고, 원소에 스칼라를 곱할 수 있으며, 그 결과가 다시 그 집합 안에 남아 있는 집합이다. 그 원소를 벡터(vector)라 부른다.

즉 “무엇으로 생겼는가”가 아니라 “무엇을 할 수 있는가”로 정의한다.1 화살표처럼 생겼는지는 아무 상관이 없다.

여기서 “스칼라”란 곱하는 수를 말하는데, 그 수를 어디서 가져오는지에 따라 공간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.

  • 스칼라를 실수 $\mathbb{R}$에서 가져오면 실벡터공간 (real vector space)
  • 스칼라를 복소수 $\mathbb{C}$에서 가져오면 복소벡터공간 (complex vector space)

Part I에서는 실벡터공간을, Part II에서는 복소벡터공간을 다룬다. 이 노트의 전체 구조가 사실 이 한 줄이다.

예시 1: $\mathbb{R}^n$

가장 익숙한 예다. 실수 성분 $n$개로 이루어진 벡터들이 모여 있는 벡터공간이다.

\[\mathbb{R}^2 = \left\{ \begin{pmatrix} x \\ y \end{pmatrix} : x, y \in \mathbb{R} \right\}\]

예시 2: 다항식 공간

차수가 2 이하인 다항식 전체의 집합을 생각하자.

\[P_2 = \{ a + bx + cx^2 : a, b, c \in \mathbb{R} \}\]

두 다항식을 더하면 여전히 차수 2 이하의 다항식이고, 상수배해도 마찬가지다. 따라서 $P_2$는 벡터공간이며, $1 + 2x$는 어엿한 벡터다. 화살표로 그릴 수 없지만 상관없다.

이 예시를 굳이 든 이유가 있다. 함수도 벡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미리 봐두면, 나중에 양자역학에서 파동함수 $\psi(x)$를 벡터라고 부를 때 덜 당황한다.

예시 3: $\mathbb{C}^n$

복소수 성분 $n$개로 이루어진 벡터들이 모여 있는 벡터공간이다. 여름학교에서 다룰 공간은 사실상 이것 하나뿐이다. Part II 전체가 이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.

1.2 Span, linear independence, basis ★★★

벡터 몇 개가 주어졌을 때, 그것들을 재료로 만들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 이 절의 주제다.

선형결합 (linear combination)

벡터 $\vec{v}_1, \ldots, \vec{v}_n$과 스칼라 $a_1, \ldots, a_n$에 대해

\[a_1 \vec{v}_1 + a_2 \vec{v}_2 + \cdots + a_n \vec{v}_n\]

을 이들의 선형결합이라 한다. 벡터공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덧셈과 스칼라배뿐이므로, 선형결합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.

v w v + w 덧셈 — 평행사변형의 대각선 2v v −v 스칼라배 — 같은 직선 위에 머문다
그림 1.1 벡터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이 두 가지뿐이다. 덧셈은 평행사변형의 대각선, 스칼라배는 같은 직선 위의 이동. 선형결합이란 이 둘을 섞은 것이고, 그래서 선형결합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.

Span

$\vec{v}_1, \ldots, \vec{v}_n$의 모든 가능한 선형결합을 모아놓은 집합을 span이라 하고 $\text{span}\{\vec{v}_1, \ldots, \vec{v}_n\}$으로 쓴다. “이 재료들로 도달할 수 있는 모든 곳”이다.

예를 들어 $\mathbb{R}^2$에서

\[\text{span}\left\{ \begin{pmatrix} 1 \\ 0 \end{pmatrix} \right\} = x\text{축 전체 (직선)}\] \[\text{span}\left\{ \begin{pmatrix} 1 \\ 0 \end{pmatrix}, \begin{pmatrix} 0 \\ 1 \end{pmatrix} \right\} = \mathbb{R}^2 \text{ 전체 (평면)}\]
v 재료가 하나 — span{v} = 직선 v w 재료가 둘 — span{v, w} = 평면 전체
그림 1.2 span 은 “이 재료들로 도달할 수 있는 모든 곳”이다. 재료가 하나면 직선, 서로 독립인 재료가 둘이면 평면 전체가 된다.

선형독립 (linear independence)

\[a_1 \vec{v}_1 + \cdots + a_n \vec{v}_n = \vec{0} \implies a_1 = \cdots = a_n = 0\]

0을 만드는 방법이 자명한 방법(전부 0을 곱하기)밖에 없을 때 이 벡터들이 선형독립이라 한다.

말이 추상적인데, 뜻은 간단하다. 어느 하나도 나머지로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. 만약 $\vec{v}_3 = 2\vec{v}_1 - \vec{v}_2$처럼 표현된다면 $2\vec{v}_1 - \vec{v}_2 - \vec{v}_3 = \vec{0}$이 되어 자명하지 않은 방법으로 0이 만들어지므로 선형종속(linearly dependent)이다. 이때 $\vec{v}_3$은 군더더기다. 있으나 없으나 span이 같다.

v w 선형독립 — 넓이가 있다 v w = ½v 선형종속 — 납작하다 (넓이 0)
그림 1.3 두 벡터가 만드는 평행사변형에 넓이가 있으면 선형독립, 납작하게 눌려 넓이가 0이면 선형종속이다. 종속일 때 w 는 군더더기다 — 빼도 span 이 달라지지 않는다. (이 “넓이”가 3장의 determinant 다.)

기저 (basis)와 차원 (dimension)

벡터공간 $V$의 기저란, 선형독립이면서 $V$ 전체를 span하는 벡터들의 모음이다.

두 조건을 각각 읽어보면 이렇다.

  • $V$ 전체를 span한다 → 모자라지 않다. 모든 벡터를 만들 수 있다.
  • 선형독립이다 → 남지 않는다.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다.

즉 기저는 딱 필요한 만큼의 최소 재료다. 기저에 속한 벡터의 개수를 그 공간의 차원(dimension)이라 하며, 놀랍게도 이 개수는 어떤 기저를 고르든 항상 같다.

기저가 주어지면 모든 벡터는 그 기저의 선형결합으로 유일하게 표현된다. 이 유일한 계수들이 바로 우리가 흔히 “벡터의 성분”이라 부르는 것이다.

1.3 기저는 좌표계의 선택이다 ★★★

이 절이 Part I에서 가장 중요하다. 그리고 Part II의 6장에서 거의 그대로 다시 등장한다.

$\mathbb{R}^2$에서 표준기저 (standard basis)를 잡자.

\[\hat{e}_1 = \begin{pmatrix} 1 \\ 0 \end{pmatrix}, \qquad \hat{e}_2 = \begin{pmatrix} 0 \\ 1 \end{pmatrix}\]

어떤 벡터 $\vec{v} = \begin{pmatrix} 3 \\ 1 \end{pmatrix}$은 이 기저에서 $\vec{v} = 3\hat{e}_1 + 1\hat{e}_2$로 표현된다. 성분은 $(3, 1)$이다.

이제 다른 기저를 잡아보자.

\[\hat{f}_1 = \frac{1}{\sqrt{2}}\begin{pmatrix} 1 \\ 1 \end{pmatrix}, \qquad \hat{f}_2 = \frac{1}{\sqrt{2}}\begin{pmatrix} 1 \\ -1 \end{pmatrix}\]

(45도 기울어진 좌표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.) 같은 벡터 $\vec{v}$를 이 기저로 표현하면

\[\vec{v} = \begin{pmatrix} 3 \\ 1 \end{pmatrix} = 2\sqrt{2}\,\hat{f}_1 + \sqrt{2}\,\hat{f}_2\]

성분이 $(2\sqrt{2}, \sqrt{2})$로 완전히 달라졌다.

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.

벡터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. 변한 것은 그것을 기술하는 좌표계뿐이다.

화살표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. 우리가 자를 다르게 댔을 뿐이다. 성분 $(3,1)$과 $(2\sqrt{2}, \sqrt{2})$는 같은 대상의 서로 다른 주소다.

e₁ e₂ v v = 3e₁ + 1e₂ 표준기저에서 본 v — 성분 (3, 1) f₁ f₂ v v = 2√2 f₁ + √2 f₂ 45° 기울인 기저에서 본 v — 성분 (2√2, √2)
그림 1.4 화살표는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. 자를 다르게 댔을 뿐인데 성분이 완전히 달라졌다. (3, 1) 과 (2√2, √2) 는 같은 대상의 서로 다른 주소다. Part II 의 |0⟩,|1⟩ 기저와 |+⟩,|−⟩ 기저가 정확히 이 e 와 f 의 관계다.

이 관점이 왜 중요한가. 앞으로 우리는 “같은 상태를 다른 기저로 측정한다”는 이야기를 계속 만나게 된다. 그때 상태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는 각도가 바뀌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. Part II에서 $\lvert 0\rangle, \lvert 1\rangle$ 기저와 $\lvert +\rangle, \lvert -\rangle$ 기저가 정확히 위의 $\hat{e}$와 $\hat{f}$의 관계에 있다.2

정리 벡터는 기저와 무관하게 존재한다. 성분(숫자 나열)은 기저를 고른 뒤에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. 숫자를 벡터라고 착각하지 말 것.

연습문제 1

1-1. $\mathbb{R}^2$에서 $\vec{u} = (1,2)$, $\vec{v} = (2,4)$는 선형독립인가? 이유를 설명하라.

1-2. $\vec{w} = (1, 3)$을 위의 $\hat{f}_1, \hat{f}_2$ 기저로 전개하라. 즉 $\vec{w} = a\hat{f}_1 + b\hat{f}_2$인 $a, b$를 구하라.

1-3. $\mathbb{R}^3$에서 벡터 4개가 주어졌다. 이들이 선형독립일 수 있는가?

1-4. 차수가 2 이하인 다항식 공간 $P_2$의 기저를 하나 제시하고, 차원을 말하라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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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1. 엄밀하게는 결합법칙, 분배법칙, 항등원과 역원의 존재 등 여덟 개의 공리를 만족해야 한다. 그러나 우리가 다룰 공간들은 전부 자명하게 이 공리들을 만족하므로, 이 노트에서는 나열하지 않는다. 궁금하면 아무 선형대수 교재의 첫 장을 보면 된다. 

  2. 실제로 $\hat{f}_1, \hat{f}_2$는 Part II의 $\lvert+\rangle, \lvert-\rangle$과 성분이 똑같다. 우연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렇게 골랐다.